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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시아의 탐방기

동인천역 ~ 인천역 : 인천의 근대 역사 문화 관람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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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가는 길에 걸려온 한통의 문자.

" 오늘 어디 안갈래? " 

카메라도 안 갖고 온 상태라,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떠나게 된 여행.

원래는 동인천역에서 출발 하여 답동성당을 시작하여 공화춘을 마지막으로 인천역에 도착하는 코스였는데

친구가 저녁은 동인천역에서 먹자고 하여  인천역부터 역순으로 돌아보기로 했다.

중화가 패루를 지나 언덕을 올라오면 중국 전통의상인 치파오를 입은 화교 상인들과

최근 복원된 중국식 근대건축물 및 은색의 간판. 홍등을 볼 수 있고

차이나타운의 대표음식인 짜장면과 공갈빵, 월병, 중국차도 맛 볼 수 있다.

여기는 에전 공화춘 건물이다.

공화춘 전신은 청국 조계지에 음식점과 호텔의 혼합형 숙식업소 였던 산동회관이었다.

1911년 산동성 출신의 화교 우희광(于希光)이 지금의 위치에 이전 개업 하였다가

이듬해 중화민국의 수립을 기념하기 위해 공화춘(共和春)으로 개명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인천과 서울의 상류층들이 이용하는 경인지역 최고급 요리점이었고

6.25전쟁 이후에는 자장면 등 대중적인 음식 보급에 앞장섰다

화강암 석축 위에 벽돌을 쌓아올린 2층 벽돌조 건물은 화교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근대 문화유산이다

일본조계(1883년) 청국조계(1884)와의 경계 계단으로 자유공원과 연결 되어있다

중앙에 돌계단을 배치하고 계단 양쪽에 조경 공간을 두어 계단 중심으로 확연하게 다른 청국과 일본 건물들이 배치 되어있다

120년간의 역사를 간직한 이 계단은 중국과의 국교가 수립되고 청계조계지 일대가 관광특구로 지정된 후

새롭게 정비되면서 계단 위쪽에는 중국 청도에서 기증한 공자상이 세워져 있다

아담하고 예쁜 세탁소

1883년 일본제1은행 부산지점의 인천출장소로 개설 되었다가

1888년 인천지점으로 승격되어 해관세와 한국에서 생산되는 금괴, 사금 매입 업무 대행 및 에금과 대출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한국은행 인천지점(1909), 조선은행 인천지점(1911)으로 사용되었다가 2010년 10월에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조성 되었다

주 출입구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구성한 절충주의 양식의 특징이다

나가사키(長崎)에 본점을 둔 일본 제18은행은 나가시키의 상인들이 상해에 수입되었던 영국 면직물을 수입하여

한국시장에 다시 수출하는 중개무엽으로 큰 이익을 거두자 1890년 인천지점을 개설하였다

조선식산은행 은천지점(1936) 한국흥업은행 지점(1954)으로 사용되다 현재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활용 되고 있다

목조 트러스 위에 일식기와로 모임지붕 형태를 하고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개항 후 인천항의 물류운송 업무가 증가하자 갯벌을 매립하여 이를 보관 할 수 있는 적벽돌 창고건축물들을 세웠다

특히 인천아트플랫폼 일대는 1899년 매립된 지역으로 현재 이러한 산업문화유산을 활용하여

지역예술인의 창착활동을 도모하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체험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얼마 전에는 KBS드라마 '드림하이'에서 나온 기린에교로 나온적이 있다

웃지요 그대 눈길에 잔잔한 행복이 도곤도곤 흐르는 것을 느껴요

의자에 써 있다

강덕봉씨의 " Question "

조금 무섭기도 한 작품은 배진호씨의 낙엽이라는 작품이다.

이것 또한 배진호씨의 동행이라는 작품

이거 역시 배진호씨의 '향기'라는 작품이다.

길가에 설치되어 있는 '작은 분수대'

인천 일보의 신구건물이 함께

 

1883년 이곳은 '바다' 였습니다

다음 행선지로 가는 길에 이쁜 카페가 있다

카페 마당에는 진돗개 2마리가 있다

갑자기 초등학생 때 키우던 삐삐가 생각나더군요

정말로 말도 잘듣고 가르쳐 주지 않아도 칭찬 받을 행동만 했던 삐삐..

제가 거실에 앉아서 양팔을 벌리면 제 품으로 뛰어오던 삐삐 기억이 나는군요..

삐삐도 진돗개였는데.....

한쪽에는 크고 작은 장독대가 있습니다.

널뛰기와 그네가 설치되어있는 마당

카페 문 앞에는 빨간지붕 집  안에는 작고 귀여운 강아지가 자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 큰 2마리 개의 새끼인가 봅니다

카페 맞은 편에는 초가집이 하나 있습니다

인성여자고등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오는 외국인 커플..

제 엎에는 언제쯤...... -ㅅ-

원래 홍예문은 윗머리가 무지개 형상을 하고 있는 문을 말하는데 이제는 자유공원에 있는 돌문의 고유명사가 되다시피 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중앙동, 관동 등에 일본 거류민들이 급격히 늘자 만석동 방면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뚫은 돌문이다

1905년에 공사를 시작했는데 예기치 못한 거대한 암석들이 나타나 3년여 걸려 완성했다

인천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원한 골바람이 불어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담장위에 귀여운 강아지와 빨강 노랑 소라껍질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는 1980년 영국 해군 중군신부였던 코프주교와 내과의사 랜디스가 인천에 도착하면서 시작 되었다

러시아영사관(1902)으로 사용되다 제물포해전 당시 일본 적십자병원이 설치되었고

한국전쟁 때 파괴된 일부를 수리하여 1955년까지 중학교 교사가 이용되다

성누가병원이 있던 곳에 1956년 현재의 건축물이 완공 되었습니다

지붕이 목조 트러스를 제외한 외벽과 등을 화강암으로 견고하계 쌓아올린 중세풍 석조의 특징이다

고프주교 와 랜디스 박사의 석상

신포시장이 환영해준다

닭강정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인천우체국 1882년 일본영사가 인천에서 처음으로 우편업무를 시작하여 1824년 일본영사관 내에 우편국을 설치하였다

영사관 내 적당한 공간이 없어 1923년 현재의 자리에 신축해 인천우체국으로 사용하다 2003년부터 인천중동우체국으로 사용충입니다

2층의 벽돌조 건축물로 벽돌을 쌓아 그 위에 시맨트 눌탈로 마감해 석조 건물로 보이게 한 것이 특징이다


고소하고 구수한 냄새가 나던 집..

전병과자 , 꽈베기 , 땅콩

마지막으로 도착한 답동성당

어느 덧 해는 뉘엿뉘엿 지고있네요

답동성당은 1889년 파리 외방전교회 빌렘신부가 포교활동을 시작한 후 1897년에 건립된 고딕양식의 성당입니다   

 적벽돌을 주재료로 중앙과 양측의 탑상부에 설치된 뽀쪽돔 및 정면의 포치와 아치장이 특징이다

답동성당에 들어가 화살기도를 드리고 나와서 한장

카메라에 석양모드가 있길래. 사용 해봤습니다

그냥 자동모드로 한장 더

인천역으로 되돌아가서 아까 못 찍은 중화가 패루를 찍었습니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패루는 웨이하이(威海)시가 기증한 차이나타운의 대표적 상징물입니다

폐루는 마을입구나 대로를 가로질러 세운 탑 모양의 중국식 전통대문으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축장식과 문화예술이 하나로 융합된 상징성을 보여준다

차이나 타운에는 중화가(中華街) , 선린문(善隣門) , 인화문(仁華門)  3개의 패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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