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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시아의 탐방기

경북궁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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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을 구경을 하고, 큰 길을 걷너 광화문에 도착하였습니다.

사람이 정말 많이 계시더군요.

외국인 , 유치원생 , 초등학생 , 중학생 그리고 커플까지.........


처음에 멀리서 봤을 때 움직이질 않으시고, 가까이에서 봐도 분장이 꼭 마네킹같아 오해를 하던 중에

어떤분이 사진을 찍기 위해 엎으로 가니 그때서야 움직이시더라고요.

하루종일 가만히 문을 지키고 계실려면 얼마나 힘드실지....

드디어 광화문으로 들어갔습니다.

앞에 보이는 문은 흥례문() 이다.

원래 이름은 '예()를 널리 편다'는 뜻의 홍례문 ()이었다고 한다.

1867년(고종 4) 흥선 대원군 과 이하응이 임진왜란 때 소실 되었던 홍례문을 중건하면서 . 흥례문으로 고쳤다고 한다.

지금의 흥례문은 1916년 일제가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흥례문을 비롯한 주변 행각()이 모두 파괴되었다가

1990년 정부가  경복궁 복원사업을 시작하면서 역사바로잡기 차원의 일환으로 1996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뒤,

2009년까지 마무리되는 경복궁 복원사업의 5개 권역 가운데 침전(殿)·동궁()에 이어

3번째로 2001년 10월 26일 완공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흥례문에서 입장권을 검사한다.

그래서 입장권을 사기 위해  표사는 곳으로 향했다.

60세 이하 어른은 3000원  10인 이상 구매시 2400원,

7세 ~ 18세 청소년은 1500원 10인 이상 구매시 1200원 이란다.

그리고 복지카드를 소지하고 게시면 공짜란다.

흥례문에서 표를 내고 나오면 다리가 하나 보이고 걷너 편에는 근정문이 보인다.

흥례문과 근전문 사이에 있는 다리는 영제교[永濟橋]라고 한다.

태조 4년(1395) 경복궁을 건설할 때 만들어진 다리이며,

세종 8년(1426) 영제교라고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영제교는  경복궁 안에 경회루 연못에서 흘러 나와 근정문과 홍례문 사이를 통과하여 동십자각 옆의

수구(水口)로 나아가 삼청동천과 합류하는 물줄기에 있던 다리라고 한다.

 영제교 역시  조선총독부를 건립하면서 해체되었고,

석재 일부가 수정전(修政殿) 앞에 있던 것을 1965년 근정전 동행각과 건춘문 사이로 옮겨 복원하였다가

2001년 경복궁 홍례문 일곽을 중건하면서 원래 자리에 이전 복원하였다.

자원봉사자인 해설사 선생님 에게 설명을 듣는 아이들..

자원봉사자 대부분들이 나이 많으신 할아버님 들이시다.

여기가 바로 전 문화재정장 이섰던 유홍준 유홍준 선생님이

무릎팍도사에 나오셔서 말씀하시던 근정전이다.

근정전은 1985년 1월 8일 국보 제223호로 지정되었으며.

조선 초기부터 역대 국왕의 즉위식이나 대례 등을 거행하던 곳으로,

근정전 역시  임진왜란 때 불타고,

현재의 것은 조선 말기인 1867년(고종 4) 11월에 흥선대원군이 중건()한 것이다. 

다포양식()의 건물로, 현존하는 최대의 목조건물이란다

근전전에서 바라본 근전문

근정전 안에 있는 어좌 와 일월오봉도

근정전 건물 뒤쪽에 있는 "드므"

드므란 방화수를 담는 용기로서,  화마(火魔)가 물에 비친  제모습에 놀라 도망가게 함으로써 화재예방을 위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근정전 이 지나면 사정전이 보인다.

사정전은 왕이 고위직 신화들과 더불어 일상 업무를 보던 곳으로,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 국정 세미나인 경언 등 각종 회의가 열리는 편전(便殿)이다.

사정전의 내부의 모습이다.

수정전 마당 심어져 있는 소나무.

얼굴만 갖다대면 신분이 바뀌네요.

내현각의 모습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세종 16년(1434)에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들었던 해시계로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이 솥이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둥근 지구 모양을 표현한 것이고 작은 크기로도 시각선, 계절선을 나타내는데 효과적이다. 

오목한 시계판에 세로선 7줄과 가로선 13줄을 그었는데 세로선은 시각선이고 가로선은 계절선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시각선에 비추어 시간을 알 수 있다.

또 절기마다 태양에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선에 나타나는 그림자 길이가 다른 것을 보고 24절기를 알 수 있다

여기는 경복궁 유일하게 들어가 볼수있는 강녕전이다 하지만  방안까지는 못들어 간다.

강녕전은 왕이 일상 거처하던 전각(殿)으로,

1395년(태조 4)에 창건하고, 정도전()이 건물 이름을 지었다.

강녕은 오복()의 하나로, 임금으로서 해야 할 이상적인 정치이념을 궁궐 건축에 반영한 유가()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1553년(명종 8)에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이듬해 중건하고, 다시 1592년 임진외란때 소실된 것을 1865년 경북궁 중건  때 재건하였다

강녕전 내부

신발을 신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리고 지금보니깐 쌍쌍커플끼리 앉아 있네...

 좀 들어가다보면 경회루가 보인다.

경복궁 근정전 서북쪽 연못 안에 세운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의 경회루는 작은 규모였으나 조선 태종 12년(1412)에 연못을 넓히면서 크게 다시 지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돌기둥만 남은 상태로 유지되어 오다가

270여 년이 지난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고쳐 지으면서 경회루도 다시 지었다고 한다.

1985년 8월 9일에 보물 제 847호로 지정 된 풍기대 다

풍기대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재기 위해 풍기를 설치하였던 경복궁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대이다

여기에선 아이들이 반 별로 서서 단체 사진을 많이 찍더라.

이 곳까지 오니. 구경 하는 사람이 몇명 없다.

사진 찍을 때 쯤 다람쥐가 길을 가로찔러 가더라.

다람쥐는 아쉽게도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여기에서 옹기전 을 하고 있다.

옹기전 바로 뒤에 있는 향원정

경북궁 창건 당시에는 이 자리는 빈터였다고 한다. 세조 때 작은 연못을 파 연꽃을 심고 취로정이라는 정자를 세웠으나

임진왜란 이후 패허가 되어 습지로 남아 있던 것을 1873년 고종과 명성황후가 흥선대원군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정지적 자립을 위해

연못의 북쪽에 건천궁을 조성하면서 다리 연못을 만들고 육모정을 세워 향원정이라 이름 지었다.

향원정은 건청궁의 앞 정원으로 왕과 왕비의 사적 공간이었다.

지금의 다리는 한국전쟁 때 임시로 설치한 남향인데, 본래는 건청궁 대문쪽에서 가로질러 있어 취향교라 하였다

취향교는 " 향기에 취해 건너는 다리 "라는 뜻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앞에 있는 12신이다.

여기도 아이들의 놀이터다. ㅋㅋ

국립민속박물관 앞에서 기념사진 찍으시는 외국에서 온 사람들.

점심은 국립민속박물관 안에 있는 매점에서

오곡차 와 떡갈비센드위치를 먹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안에 전시된 물품들 중에 제일 사람이 많이 몰린 곳이다.

구경하시는 어르신들께서는 다들 옛추억을 이여기 하시면서 보시더라.

 

년도 별로 민속박물관에 기증 해주신 분들을 이름으로

하나의 디자인품으로 만들어놓았다.

여기는 건청궁이라는 곳이다.

건청궁은  명성황후가 일본의 낭인들에게 시해당한 곳이다.

1873년 고종이 사비를 들여 짓기 시작하여 1884년부터 기거하였다.

1887년 국내 최초로 전기가 가설되었으며, 1909년 완전히 헐렸다가 2007년 복원되었다

어좌에는 왕 대신 앉지마세요라는 안내판이 앉아 있네요.

여기는 집옥채이다.

조선 고종이 서재로 사용하던 곳으로 경복궁 건청궁 안에 있다.

신무문 동쪽에 있으며, 왼쪽에 팔우정, 오른쪽에 협길당이 있다.

원래는 팔우정·협길당과 함께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으로 지어졌으나,

1888년 고종이 거처를 창덕궁에서 경북궁으로 옮기면서 함께 이전되었다

집옥채를 보고 신무문쪽으로 가는 길에.

신무문으로 나가면 보이는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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